"네 남편과 바람난 여자"…환청 사로잡힌 40대女의 습격[사건의재구성]
환청 듣고 일면식도 없는 여성 스토킹·폭행·살인미수
"할아버지가 시켰어요" 변명…재판부 "자수 아냐"
- 유수연 기자
(서울=뉴스1) 유수연 기자 = "할아버지가 그 집 손녀딸을 찌르라고 했어요."
정 모 씨(49·여)의 이유 없는 분노는 환청에서 시작됐다. 정 씨의 머릿속에 나타난 할아버지는 일면식도 없는 여성 A 씨를 가리키며 "네 남편과 바람났던 여자"라고 속삭였다.
환청을 들은 정 씨는 A 씨에게 집착하기 시작했다. 정 씨는 A 씨가 가족과 함께 사는 집으로 찾아가 소주 박스를 두거나 편지를 꽂는 등 기행을 반복했다.
결국 정 씨는 스토킹 행위로 법원으로부터 약식명령을 받았다. 그러나 정 씨의 집착은 멈추지 않았다. A 씨를 향한 정 씨의 분노는 점차 구체적인 살해 계획으로 변해갔다.
지난해 11월 29일 밤 11시 20분. 서울 성북구의 한 골목에서 정 씨는 귀가 중인 A 씨에게 다가갔다. 정 씨는 "당신이 내 남편과 바람났다"고 외치며 A 씨의 몸 위에 올라타 여러 차례 폭행했다.
기습적인 폭행은 시작에 불과했다. 일주일 뒤인 12월 6일. 정 씨는 흉기를 외투 속에 숨긴 채 A 씨의 근무지 주변에서 두 시간 가까이 숨어 있었다.
퇴근 중이던 A 씨가 모습을 드러내자 정 씨는 100m가량 A 씨를 몰래 따라가다 "너 이리 와. 너 가만 안 둬"라고 외치며 흉기를 휘둘렀다.
A 씨는 손으로 칼을 잡으며 버텼고, 주변 시민들이 112에 신고해 목숨을 건졌다. A 씨는 머리에 6주간 치료가 필요한 상처를 입었다.
정 씨는 범행 후 서울 강동경찰서에 자진 출석했다. 그러나 경찰 조사에서 '할아버지' 탓을 하며 책임을 회피했다. 정 씨는 '피해자를 살해할 목적이었냐'는 경찰의 질문에 "안 하면 할아버지가 나를 괴롭히고 내가 죽을 것 같았다. 저도 하고 싶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법원은 정 씨가 이같이 책임을 부인한 행위는 '자수'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꾸짖었다. 아울러 범행 며칠 전 흉기를 구입한 점, 범행 시간과 장소를 미리 계획한 점 등을 고려해 정 씨 측의 심신미약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1부(부장판사 김우현)는 지난달 2일 정 씨에게 징역 6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살인의 결과가 실현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범죄 행위 및 결과의 위법성이 중하다. 피해자의 저항이 없었더라면 자칫 생명을 잃을 수도 있었다"며 "피해자는 신체적, 정신적 피해를 호소하고 있고 정 씨의 형사 공탁금에 수령 거부 의사를 밝히며 엄벌을 탄원한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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