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달걀 파동에 암탉 키우라는 나라…관세전쟁 민낯
- 류정민 특파원
(워싱턴=뉴스1) 류정민 특파원 = "달걀을 언제 살 수 있나요?"
"아마도 (이틀 후) 화요일쯤에요."
지난달 2일 미국 버지니아주 웨스트옥스에 있는 코스트코 매장에서는 안경을 쓴 백인 아저씨도, 모자를 눌러쓴 동양인 아시아계 여성도, 텅 빈 달걀 매대를 보고 눈길을 주고받으며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20여 일이 지난 2월 23일. 'Limit 3 Eggs'(달걀 3개로 제한)이라는 글귀가 무색하게 달걀 매대가 여전히 텅 비어 있었다.
아내가 지인들과 '달걀 고민'을 나누다 어느 날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오전 일찍 가면 살 수도 있다고 하네." 어렵사리 3월 1일 오전 코스트코 매장에서 24구들이 세 상자를 사들고 나왔다.
24개 한 판에 8.59달러, 3판이니 25.77달러다. 여기에 주별로 판매세 등이 7% 정도 붙는데, 이를 빼고도 달걀 한 알이 36센트(약 500원) 정도 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할 즈음인 1월 25일 영수증을 찾아보니 5 DOZ달걀(60구)이 14.59달러, 한 알당 24센트였다. 한 달 조금 지났는데 50%나 뛰었다.
이렇게 가격이 오르다 보니 코스트코 같은 대형 매장은 금방 달걀이 동나고, 뉴욕과 같은 대도시 마트에서는 12구들이를 15달러에 판다. 한 알이 1.25달러, 1800원이다.
미국 달걀 가격은 조류 인플루엔자 영향이 크다. 미 당국에 따르면 2022년 미국에서 조류 인플루엔자가 발발한 이후 살처분된 산란계는 약 1억 6600만 마리에 달한다.
비록 조 바이든 행정부 때부터 시작된 일이라고 해도, 물가 안정은 어찌 됐든 트럼프 행정부의 몫이다. 관세전쟁과 정부 축소에 정신이 없던 트럼프 행정부는 최근 들어서야 달걀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브룩 롤린스 농무부 장관이 방송에서 "뒷마당에서 닭을 기르면 된다"고 조언한 것은 실소를 자아냈지만, 그 말로 달걀값이 더 오르지는 않았을 테니 접어두자.
문제는 달걀 사태가 달걀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트럼프가 관세전쟁을 고집하고 보복에 재차 보복을 일삼는다면 매대에서 품절되는 게 달걀 하나에 그치지 않을 것이 자명하다.
트럼프 사전에는 관세가 '가장 아름다운 단어'로 적혀 있을지 몰라도 다른 모든 전문가들은 '관세는 세금'이라고 말한다. 자국 소비자가 비싼 값을 치르고 물건을 사야 하고, 그만큼의 수입은 정부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지난 4일부터 중국 수입품 추가 관세를 10%에서 20%로 더 높였고, 12일에는 세계 철강·알루미늄 제품에 25% 관세를 부과했다. 내달 2일부터는 자동차, 반도체 등 품목별 관세 25%를 비롯해 상대국의 관세 및 비관세 무역장벽까지 고려한 '상호관세' 부과를 예고하고 있다.
미국 국민들의 걱정이 비명으로 바뀔 가능성이 높다. 그때는 에너지부 장관이 방송에 나와 "뒷마당에서 기름을 뽑아올리면 된다"고 말하거나, 상무부 장관이 "거라지(차고)에서 차를 만들어 타라"고 조언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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